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TAECKST 2022. 5. 15. 16:59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졸린 와중에 1층 현관 앞에 종이 박스가 요란하게 뒹구는 소리가 들려온다. 배송 드론이 고도를 충분히 낮추지도 않고 택배를 떨어뜨린 것이다. 드론과 마주칠 기회가 있다면 한 소릴 해야 하겠다. 그래, 마주칠 기회만 있다면. 에이비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택배 상자를 뜯는다. 그녀는 드디어 원하던 드림머신을 손에 넣었다. 플라스틱 커스텀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밝은 노란색이다. 눈에 초점이 없는 펭귄 스티커도 몇 개 붙어 있다. 아무렴 어떤가. 드림머신을 생산하던 업체들은 대부분 도산한 지 오래였기에 오래된 중고라도 구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드림머신은 머리띠 형태를 한 기기로, 머리에 쓰고 버튼을 눌러두고 잠이 들면 뇌파를 유도해 자각몽을 꿀 수 있게 해주었는데, 무선 연결된 개인 스마트 단말기의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꿈 속의 날씨나 밤낮, 장소, 어느 정도 단순한 단어 나열로 설명할 수 있는 무드, 미리 저장한 이미지나 영상을 활용해 어느 정도 등장 사물이나 인물을 바꿀 수 있었다. 자각몽을 꿀 확률이 그리 높지도 않았고, 사용자마다 경험이 다르거나, 항상 의도대로 작동되는 것은 아니었으며, 드림머신을 통해 꾸는 꿈은 외부와 공유할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녹화가 되거나, 사진 이미지로 남기거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잡다한 특성으로 인해, 미디어 기기로써 어떤 확장성을 가지지 못하고 그저 조금 신기한, 그리고 괴팍한 장난감 정도로만 치부되었다. 대부분의 드림머신 개발사가 정도 이상 사업을 확장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그런 이유일 것이다. 비슷한 기기들이 유행하던 시기엔 전혀 기능하지 않는 모조품들도 만들어졌기에, 에이비는 빨리 자신이 허투루 돈을 낭비한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알아내고 싶었다.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길 기다리며, 유연한 연속 관절 구조로 굽혔다 펼쳐지는 드림머신을 이리저리 만지작거렸다. 모조품을 이렇게 정교하게 만들 리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며, 스마트 단말기와 페어링 된 드림머신을 세팅했다. 아침, 화창한 날씨, 무드의 공란에 “사실적인”을 타이핑했다. 머리에 얹었다. 드림머신은 기다렸다는 듯 나뭇잎에 내려앉는 대벌레처럼 에이비의 이마를 감싸며 붙었다.

 

 에이비는 아침에 깨어났다. 드림머신이 작동하지 않았음에 화를 내려는 찰나, 이마에 있어야 할 드림머신이 없어진 것을 깨달았다. 떨어진 것일까? 에이비는 이불을 뒤적이다 박차고 나와, 침대 밑을 살핀다. 드림머신은 어디에도 없다. 아무도 없는 거실을 지나, 집 밖으로 나갔다. 집 밖에는 아무도 없다. 에이비는 상상의 힘만으로 하늘로 떠올라 날아올랐다. 지붕 위에 오르자, 에이비는 조금 무서워졌다. 날아올랐다는 것이 꿈속이라는 사실을 증명했음에도, 간지러운 두려움 속에서 지붕에서 뛰어내리자 중력이 작용해 에이비의 다리뼈가 박살 났다. 회백색 뼈가 정강이를 뚫고 나와 작은 뼛조각을 살점 위로 흩어낸다. 에이비는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깨어난다.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여전히 이마에 드림머신은 없었다. 어쩌면 드림머신을 테스트 해 본 것이 전부 꿈이었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생각이 미친다. 에이비는 어지럼증을 느끼며 어머니가 차려 둔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책상에 앉았는데, 바지가 없다. 에이비는 주변의 의문스러운, 혹은 무관심한 눈길을 무시한 채 창문 밖으로 날아올랐다. 얼마나 멀리 날아갈 수 있을까…. 에이비는 멀리멀리 날아갔다. 에이비는 사라졌다.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이번엔 이마에 반쯤 벗겨진 드림머신이 있다. 에이비는 드림머신을 벽으로 던져 버린다. 에이비는 아침을 거르고 곧바로 학교에 간다. 그런데 그날은 일요일이었기에 아무도 없다. 텅 빈 학교 복도에 선 에이비는 더 이상 속지 않기로 한다. 에이비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만해.”

 

 기억의 단편들로부터 흘러나온 작은 웅얼거리는 소리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 그 나비의 문양 말이야.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난다. 이번엔 드림머신이 없다. 에이비는 손가락 엄지와 나머지 손가락들을 차례대로 맞대며 꿈에선 불가능할 법한 일을 시도한다. 에이비의 손가락이 늘어나 붙어 버린다. 무수한 시간의 간격도 에이비의 통제를 벗어난다. 에이비는 비명을 지른다.

 

 에이비는 비가 오는 한밤중에 깨어났다. 이마를 만지자 이번엔 드림머신이 있다. 에이비는 누운 채 고함쳐 엄마를 부른다. 방문이 열리고 엄마가 에이비를 찾는다. 하지만 에이비에게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에이비는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에이비를 흔든다. 에이비는 엄마가 보이지 않는다. 에이비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한다.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 꿈에서 깨어난다. 에이비는 하품을 하고, 드림머신을 벗어두고, 방을 나선다. 책장 앞에 서 있던 에이비는 자신을 따라가려 하지만, 움직일 수 없다. 에이비는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아무런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에이비는 떠났다. 방은 조용하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 그때 시계의 초침 소리가 들려온다. 초침 소리가 들려온 것이 아니다. 초침 소리는 원래 거기에 있었다. 초침 소리는 시간을 조금씩 갉아내지만, 깨어날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에이비는 긴 잠에서 깨어난다. 에이비는 사막에 버려진 종이 지도처럼 마르고 닳아버린 기분을 느끼며 입을 벌리고 주위의 모든 것을 철저하게 느끼기 위해 주어진 모든 감각을 곤두세운다. 거실 냉장고의 진동음이 들려오고, 침대엔 엄마의 실루엣이 걸터앉아 있다. 엄마는 다가와 에이비의 땀과 눈물을 닦아 준다. 무슨 일인지 묻는다. 에이비는 이제 완전히 현실로 돌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에이비는 엄마 품에서 훌쩍이다가 목에 걸려 있던 드림머신을 쥐고 천장을 향해 들어 올린다. 이대로 부숴 버려도 시원치 않다.

 

 에이비는 모니터를 보고 고민 끝에 손가락을 떨군다. 클릭 소리와 함께 드림머신의 사진이 중고 거래 페이지에 올라간다. 에이비는 잠시 고민하다가, 양심의 가책을 덜어내기 위해 새로운 코멘트를 타이핑한다. “악몽을 꿨어요.” 그저 자신에겐 맞지 않았을 뿐이다.

 

 에이비는 상가 옥상에 올라 절대 꿈에선 불가능한 것들을 느끼기 위해 노력한다. 건물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하늘을 날 수 없으며, 낙하하면 절대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확신, 그리고 공포감이 밀려온다. 당연한 일이다.

 

 에이비는 오랜 친구들을 만나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에이비는 웃는 친구들의 잇몸과 송곳니, 혀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핀다. 친구들의 몸짓과 디테일은 과연 믿을 만하다. 에이비는 친구들에게 있었던 일을 설명한다. 하늘을 날았던 일, 바닥으로 떨어진 일, 학교에서 바지가 없어지고, 휴일에 혼자 학교에 간 일, 손가락이 늘어나 붙은 것, 곁에 있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던 것, 자신을 쫓아갈 수 없었던 것, 무한한 꿈이 계속되었던 것.

 

 친구들은 에이비를 위로하고는, 뒤이어 꿈을 주제로 한 온갖 잡다구레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에이비는 이제야 조금 안심이 된다.

 

 그때 텍스트 메시지가 도착한다.

 

 드림머신을 구매한다는 구매자가 나타났다. 정량의 디지털 달러 입금액이 찍혔다. 구입했을 때 보다 훨씬 싼 금액이지만 하루빨리 이 노란 것과 작별을 고하고 싶다. 에이비가 운송장을 입력하면 그 푼돈은 거래소의 거래 대기 계좌에 예치될 것이다.

 

 에이비는 드림머신을 포장한 손바닥 두 뼘 크기의 택배 상자를 배송센터 접수대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망설인다. 그러는 사이 구매자로부터 기기 초기화가 되어 있는지 묻는 텍스트 메시지가 도착한다. 에이비는 두통을 느끼며 초기화도 초기화지만 스마트 단말기와의 페어링부터 끊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에이비는 스마트 단말기를 꺼내든다. 단말기에는 아직 <수면 중>이라는 텍스트가 띄워져 있다. 께름칙하다. 그리고 페어링을 끊는 버튼을 누른다. 에이비는 바람에 꺼지는 촛불처럼 정신을 잃는다.

 

 에이비는 화창한 아침에 깨어났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