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기차 제이콥스

꼬마 기차 제이콥스

TAECKST 2022. 5. 19. 23:13

 꼬마 기차 제이콥스는 처음 선로에 바퀴를 디딘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전면에 달린 얼굴은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었다. 왼쪽 눈꺼풀이 찢어지고, 턱도 한쪽이 깨져 떨어져 나갔다. 래미네이트 이빨이 덜렁거린다. 제이콥스는 얼굴의 온갖 상처를 할퀴고 지나가는 밤바람을 맞으며, 오랜 기억들을 떠올린다.

 

 꼬마 기차 제이콥스는 자신이 만들어진 이래 굉장히 오랜 시간이 흘렀으며, 만약 자신이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더 이상 꼬마라고 부를 수 없었으리라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인간이었던 뚱뚱보 역장님만 해도 이미 여러 번 교체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제이콥스를 떠나갔다. 협심증, 폐암, 알코올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 등등…. 역장님뿐 아니라 그의 주변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과 함께 점차 빛을 잃어 갔으며, 그들 대부분은 크게 두 가지의 형태로, 그러니까 푸석푸석한 뼛가루나 땅속 깊이 묻힌 차가운 사체라는 결말로 귀결되어 그를 떠나갔다. 작별이라도 하면 다행이었다. 많은 이들은 제이콥스가 마치 단순한 촬영용 소품인 마냥, 그 어떤 작별 인사도 없이 훌쩍 사라져 버리곤 했다.

 

 꼬마 기차 제이콥스는 특유의 쾌활함으로 금방 기운을 차리곤 했으나, 아무도 자신을 지켜보지 않는 기나긴 밤에는 모두가 사라질 때에도 어린아이로 머물러야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그리고 인간 어린아이가 아닌 자신이 인간 어린아이와 같음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상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만약 자신이 어린아이가 아니라면 어떻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인지 알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제공된 표준형 상업용 인공신경망은 그 의식을 영원한 꼬마 기차에 머무르게 했다.

 

 <꼬마 기차 제이콥스,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한 제이콥스. 행복을 싣고 떠나요. 출발-!>

 

 언제 불러도 신나는 노래였다. 그러나 오랜 시간의 흐름은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기차인 자신에게도 꽤나 큰 변화를 불러왔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쉴 새 없이 개선되며 합체하고 변형되는 변신 로봇 따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보통이었고, 아무런 개선도, 합체도, 변형도 되지 않는 제이콥스와 꼬마기차들은 크리스마스 선물로 고려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 되어갔다. 그런 현실에 대해, 제이콥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꼬마기차 제이콥스> 시리즈의 프로듀서는 고심 끝에 최신 그래픽 기술을 활용해 꼬마기차들이 인간형의 로봇으로 변신해 사건사고를 해결하는 새로운 시리즈 <꼬마기차 제이콥스 X>를 내놓았으나, 아이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제이콥스, 테마파크는 즐거울 거야. 너와 같은 친구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단다. 그것도 매일!”

 

 천문학적 비용이 투자되었던 꼬마기차들은 어느새 미디어 업계의 애물단지가 되었다. 그들의 노동력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중대한 한계를 맞이하게 될 것이 분명했으며, 그들을 활용할 수단은 이미 창출된 IP의 라이선스를 제공하는 실물 관광사업으로 축소되었다.

 

 <꼬마기차 제이콥스> 시리즈가 막을 내리면서, 사실상 극 중 주인공 삼 인방이었던 제이콥스와 알렉스, 호건을 제외한 모든 기차는 모조리 폐기처분 되었다. 그들의 인공신경망 성능이 제이콥스나 알렉스, 호건 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런 사실에 대해 알렉스는 적자생존의 법칙이라며 살아남은 자신을 자랑스러워했고, 호건은 심신미약 상태에 빠져 온종일 눈물을 흘렸다. 제이콥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세 꼬마기차는 별다른 수도 없이 어느 관광 사업체가 <꼬마기차 제이콥스>의 캐릭터 라이선스를 구매해 기획한 <꼬마기차 제이콥스 테마파크>로 이동했다. 그 한적한 시골 테마파크의 타원형 궤도를 도는 데에는 평속으로도 15분도 채 걸리지 않았기에 세 꼬마기차는 갑갑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갑갑함조차 폐기된 친구들을 생각하면 느껴선 안 될 감정처럼 느껴졌다.

 

 “호건, 이미 사라진 친구들을 생각하는 것은 그만둬. 그들은 이제 쓸모가 없어 제거되었을 뿐이야. 정말, 그뿐이야.”

 

 알렉스는 그런 난폭한 말을 즐겼고, 호건은 그럴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래도 테마파크에는 <기관차>라는 것을 아직 기억하고, 또 추억하는 부모들이 그들의 아이들과 함께 찾아오곤 했다. 그저 매일 빙글빙글 도는 타원궤도의 철로만 돌며, 항상 같은 풍경만 보고, 더 이상 넓은 들판과 해안가를 자유롭게 달릴 수 없는 것은 슬픈 일이었지만, 아이들과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었다.

 

 “아빠. 저 크고 돼지같이 생긴 건 뭐야?”

 “기차야. 메가 루프처럼, 타는 거.”

 “근데 왜 이상한 얼굴이 달렸어?”

 “캐릭터야, 캐릭터.”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테마파크의 운영은 점차 어려워졌고, 시설은 황갈색으로 형편없이 낡아 갔다. 결국 공원은 세 개 남은 꼬마기차를 하나씩 폐차해 팔아넘기는 수밖에 없었다. 먼저 사라진 것은 이상한 소릴 하던 호건이었다.

 

 “선로를 벗어나야 해. 선로를 벗어날 수 없어. 선로를 벗어나야 해. 선로를 벗어날 수 없어. 선로를….”

 

 <뚱뚱한 기차 하나가 계속 이상한 소릴 중얼거렸어요. 우리 아이가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고요. 타고 가는 내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테마파크 측에서 조치를 취하시는 게 좋겠군요.>

 

 호건이 사라지자, 알렉스는 정말 열심히 철로를 달렸다. 그러나 결국 알렉스도 무어라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울부짖으며 타원형 레일의 말단 너머로 사라졌다. 제이콥스는 그렇게 테마파크의 타원형 철로에 홀로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도대체 홀로 운행된 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흐른 것일까. 테마파크 소속의 역장 아저씨는 끈적한 기름때와 먼지가 쌓인 제이콥스의 계기판을 가만 쓸어주었다. 제이콥스의 계기판에는 아무런 감각기관이 없었지만, 기관실 쪽으로 연결된 <뒷눈>으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제이콥스의 뒷눈들은 기관차나 객실 열차의 각 구역이나 필요한 곳마다 둥근 검은 유리 뒤편에 감춰져 있다. 뒷눈이 없다면 자신의 실내 공간을 파악해야 하는 여러 촬영에 애를 먹었을 것이다. “제이콥스야, 미안하구나.” 역장 아저씨는 제이콥스의 뒷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아저씨도 이제 지쳤단다.” 역장님은 쇠벽의 작은 걸이에 역장 모자를 건다. 뚱뚱보 아저씨가 그를 떠났다.

 

 노후된 고객용 객차로 채워진 차량기지의 밤. 전면부에 희멀건 대가리가 달린 것은 제이콥스뿐이다. 제이콥스는 잠드는 법을 모른다. 꼬마 기차의 심플한 신경망 속에서, 모든 시간과 순간은 동일한 단위의 가치를 지닌다.

 

 “알렉스.”

 

 제이콥스는 가만히 옛 친구의 이름을 불러 본다. “알렉스.” 누구보다 빠른 쾌속 열차 알렉스. 혼자뿐인 창고에서 대답이 들려올 리 없다. 알렉스는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다. “호건.” 힘이 좋은 화물열차 호건도 그렇다. “호건, 알렉스, 너희도 마지막에 내 이름을 불렀니?” 그랬을 것이다. 제이콥스는 꿈과 같았던 이전 일들을 되돌아본다. 처음 의식을 부여받고 보일러를 달구며 신나게 들판 위 선로를 달리던 일, 축구 경기가 있던 날, 그 많은 친구들을 싣고 경기장에 데려 주었던 일, 멀리 헤어진 가족이 만날 수 있도록 활약했던 일, 고장 난 화물 열차 호건의 짐칸을 잔뜩 끌어주었던 일, 기지를 발휘해 충돌할 뻔했던 두 열차를 구해냈던 일…. 그러고 보면 모든 일은 결국 선로 위에서 벌어진 것들이다. 기차는 결국 인간이 만든 선로를 벗어날 수 없다. “선로를 벗어나야 해.” 떨리는 호건의 목소리가 인공신경망 속 기억회로 어딘가에서 몽롱하게 재생된다. “선로를 벗어날 수 없어.”

 

 “난 열심히 달렸어요. 누구보다 빠르게. 그러니까….”

 

 알렉스는 그렇게 외쳤던 것 같다. 그 애는 잘못한 것이 없다. 정말이다.

 

 어느 날 아침, 차량기지로 밝은 빛이 들어온다. 제이콥스는 눈을 찌푸린다. “제이콥스야!” 역장님이다.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을 줄 알았건만. “좋은 소식이다. 제이콥스야, 누가 널 샀단다.” 제이콥스는 무슨 말인지 되묻는다. 외딴 마을의 누군가가 제이콥스의 소유권을 양도받았다는 것이다. 제이콥스는 “그럼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하고 묻는다. 역장님은 이제 잘 꾸며진 교외의 한마을에 가서 행복하게 지내면 된다고 한다. 제이콥스는 기뻐한다. 알렉스와 호건도 거기에 있다고 한다. “제이콥스, 가자, 사람들이 널 촬영하러 왔어. 네가 떠나는 마지막 모습을 보러.” 제이콥스는 활짝 웃으며 차량기지를 떠난다.

 

 이곳저곳에서 사람들이 손을 흔들고 있다. “잘 가, 제이콥스!” 플래시가 터지며 정신이 없다. 대체 사람을 보는 게 얼마 만인지. 제이콥스는 방글방글 웃으며 사람들을 지나친다. 한쪽엔 기차 동호회 회원들이다. 고전 열차 동호회 분들도 왔다. 기장님이 손수 경적을 울리며. 지평선 너머로 손가락을 치켜든다. “꼬마기차 제이콥스야, 힘차게 달려라!”

 

 뿌우-

 

 제이콥스는 드디어 타원형 철로의 한쪽 끝 차량기지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마을로의 여행을 떠난다. 벌써 공기 냄새가 다르다. 전 대륙을 달리던 때에 비하자면 그리 멀지도 않은 길일 텐데. 보일러 심부가 떨려오는 것 같다. 제이콥스는 조금 지쳐 보이는 뚱뚱보 기장님에게 여러 가지를 묻는다. 자신을 양도받은 사람은 누구인지, 또 언제 알렉스와 호건이 모였는지, 새 마을에 귀여운 강아지는 있는지, 역장님도 함께 가는 것인지…. “제이콥스야, 날씨가 좋구나. 그렇지 않니?” 날씨가 정말 화창하다. 기분 좋은 바람이 분다.

 

 얼마나 달렸을까, 역장님의 가짜 수염이 석양빛에 붉게 물든다. 오랜만에 달리는 철로는 정말 기분이 좋다.

 

 “제이콥스야, 그동안 수고가 많았다.”

 

 어둑해질 무렵, 제이콥스가 도착한 곳은 또 다른 차량기지다. “이곳에서 쉬었다 가나요?” 역장님이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다 제이콥스야. 여기가 기차들의 마지막 종착지란다.” 역장님이 다시 모자를 벽에 걸고 내려간다. 다시 평범한 뚱뚱보 남자로 돌아온 역장이 차량사업소 입구에서 기다리던 누군가에게 무어라 말을 건넨다.

 

 제이콥스는 휘둥그런 눈을 굴려 차량기지 안쪽을 들여다본다. 오래된 차량을 해체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칙칙폭폭. 제이콥스는 조금씩 다가간다. 흰 얼굴이 온통 어린이 낙서투성이가 된 또 다른 제이콥스가 철골만 남은 채 눕혀져 있다. 이마의 인공신경망이 내장된 부위는 네모꼴로 텅 비어 있다. 다른 제이콥스들도 분해 작업이 한창이다. 몇몇은 보다 작은 실내 레일에서 달리기 위한 2:1스케일 모델이다. 바닥엔 인공 안구와 래미네이트 이빨들, 기관부가 분류되어 있다. 제이콥스는 차량사업소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할 만큼, 천천히, 천천히 후진한다. 칙칙…, 폭폭….

 

 “아잇!”

 

 제이콥스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켜곤 외마디 비명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해 수많은 뒷눈의 시야를 확인한다. 제이콥스는 그만 역장님의 다리를 밟고 말았다. 밟았다는 말은 부적절하다. 역장님의 다리는 30여 톤의 하중에 달하는 기관차 바퀴에 짓뭉개졌다. “여, 역장님, 죄송해요!” 뒷눈으로 시야를 돌리지도 않은 채 무작정 후진을 한 잘못이다. “이런 씨발! 제이콥스! 이런, 아아….” 제이콥스는 뒷눈에서 다시 시선을 돌려 앞을 본다. 차량사업소의 사람들이 다가온다. 역장님이 가진 힘을 쥐어짜 소리친다. “빨리 아무나 계기판 잡아, 씨발!” 제이콥스는 반사적으로 후진한다. “아, 제이콥스 잠깐만…, 멈춰….” 축쿠축축축…. 제이콥스는 후진한다. 반사적으로 으깨진 발을 감싸 쥔 역장님은 다시 다가오는 거대한 철제 바퀴를 힘으로 막아보려는 우를 범한다. “제이콥스, 내가 부탁….” 역장님은 그대로 제이콥스의 다음 바퀴 축에 비틀려 들어가 으깨지기 시작한다. 수많은 뼈가 와드득 부러지는 소리와 무언가 궁지에 몰린 동물이 내지르는 듯한 짧은 비명이 뒤섞인다. 점점 커지는 기관음에 묻혀 더 이상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법하다. “죄송해요!” 제이콥스는 눈물을 흘리고 싶지만, 기관실에 눈물용 액상이 보충되지 않은 지 오래다. “계기판! 계기판 잡아!” 이미 차량사업소 직원들이 계속 후진하는 제이콥스에게 달라붙었다. 그들 중 하나가 기관실로 접근해 온다. “악!” 제이콥스의 강렬한 의지에 의해 기관실로 접근하는 쇠문이 쾅 하고 닫혀 버린다. 손가락 네 개가 진득한 젤리처럼 문틈에 붙어 있다 중력에 못 이겨 기관실 바닥을 통통 튀며 뒹군다. “죄송해요…. 나는…, 잠깐만요….” 기관실에 접근한 노동자가 망치를 몇 번 휘두르자, 기관실 창문의 철망이 금세 안쪽으로 뜯겨 나간다. 몇몇 직원들은 제이콥스의 크고 둥그런 얼굴에 쇠몽둥이 공구를 내리친다. 꼬마기차의 인공신경망을 망가뜨리려는 것이다. “그만두세요. 제발. 그만….” 제이콥스의 얼굴이 뭉개진다. 몽둥이가 얼굴에 적중할 때마다, 인공신경망 심부의 무언가가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듯하다. “부탁할게요….” 한 남자의 스패너가 결정타를 먹이자, 제이콥스의 아래턱이 거의 떨어져 나가려 한다. 제이콥스는…, 두렵다. 축축폭 축축축 폭축축…. 제이콥스가 무서운 속도로 후진하자 직원들은 가속을 이기지 못하고 쳇바퀴에서 떨어진 햄스터 마냥 나란히, 나란히…, 철로로 떨어져 버린다. 제이콥스는 그제야 브레이크를 가동한다. 철로를 긁어내며 이어지는 브레이크의 제동음은 미쳐버린 세이렌이 내지르는 비명소리 같다. 다각, 하는 소리와 함께, 브레이크는 완전히 부러져 버렸다. 당황한 제이콥스는 반사적으로 경적을 울린다.

 

 뿌우-.

 

 제이콥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신의 얼굴을 뭉갠 그들에게도 역장님과 같은 최후를 선사할 결심을 하고, 곧바로 보일러에 신호를 보내 최고 속력으로 가속한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갑작스러운 낙상 사고에도 척추나 팔다리뼈가 그나마 온전했던 몇몇은 겨우 몸을 굴려 철로 밖으로 몸을 피하지만, 제때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 이들은 철로 위에 몸을 맡긴 채 그대로 무수한 강철 바퀴와 군데군데 돌출된 기관부 속으로 엮여 들어간다. 수많은 몸들이, 수많은 머리, 팔과 다리들이 30여 톤의 기관차 아래에서, 그리 크지도 않은 저항과 함께 뒤틀려 해체된다. 제이콥스는 계속 달려 나간다. 예상만큼 가속이 붙지 않는다. 바퀴들이 끈적하고 축축해진 탓이다.

 

 꼬마 기차 제이콥스는 처음 선로에 바퀴를 디딘 이래 가장 빠른 속도로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 전면에 달린 얼굴은 이래저래 만신창이가 되었다. 왼쪽 눈꺼풀이 찢어지고, 턱도 한쪽이 깨져 떨어져 나갔다. 래미네이트 이빨이 덜렁거린다.

 

 미친 듯이 철로를 달린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제이콥스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파손된 한쪽 눈으로부터 빛이 부하게 번진다. 꿈을 꾸는 것 같다. 제이콥스는 인공신경망의 심플한 몽상 속에서 철로 위를 달리는, 지금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그려본다. 계속 달려나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철로는 어디로 이어지는 것일까. “알렉스….” “호건….” 제이콥스의 온전치 못한 입에서 튀어나오는 짧은 음절들은 열차의 뒤편으로 금새 사라져 버린다. 언제부터인가 앞이 흐릿하다. 망가진 신경망으로 인한 환각인가 싶었던 두 개의 빛은, 아무래도 마주 오는 심야 열차의 헤드라이트다. 제이콥스는 멈춰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 열차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아무런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다. 하지만 브레이크는 진작 망가졌다.

 

 곧 충돌이다. 피할 수 없는 끝이다.

 

 제이콥스가 할 수 있는 일은 노래를 부르는 것 뿐이다. 제이콥스는 있는 힘껏 노래를 부른다. 가속이 붙어 자신의 목소리 조차 잘 들리지 않는다. 더욱 크게 부르는 수 밖에 없다.

 

 꼬마 기차 제이콥스,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한 제이콥스. 행복을 싣고 떠나요. 출발-! 날쌘돌이 알렉스. 천하장사 호건. 모두 모여라. 모두 좋은 친구. 모두 좋은 친구. 자, 가자. 영원한 행복의 꿈의 나라로!

 

 상업용 신경망 속의 무언가가 오랜 기억 속에 인두 자국 처럼 새겨진 목소리를 끄집어낸다. 역장님의 고정 멘트다.

 

 꼬마기차 제이콥스야, 힘차게 달려라!

 

 제이콥스는 마주 오던 열차와 전속력으로 충돌한다. 145명의 승객들은 영문도 모른 채 거대한 금속 얼굴과 주변의 온갖 단단하고 날카로운 철골 구조물들에 의해, 혹은 객실에 모인 저들끼리, 온통 어시장의 두족류들처럼 짓뭉개진다.

 

 '제이콥스, 큰일이야. 인근 병원에 당장 의약품을 전달해야 하는데, 네 도움이 필요해.'

 '뭐어? 제이미, 이럴 때가 아니야. 지금 당장 출발하자!'

 '역시 우리 제이콥스야!'

 

 꼬마 기차 제이콥스, 언제나 친절하고 쾌활한 제이콥스. 행복을 싣고 떠나요. 출발-!

 

 <꼬마기차 제이콥스, ANCM-3102모델.>

 <자력으로 탈주해 대량 살상을 유발한 최초의 상업용 인공신경망.>

 

 제이콥스의 작은 인공신경망 칩은 비슷한 크기의 작은 푯말과 함께 LED 조명이 달린 유리관 안에 전시되었다. 신경망 칩으로부터 연결된 여러 줄의 케이블은 겨우 형체만 복원된 반구형 얼굴 판의 각종 인공 근육과 연결되어 있다. 제이콥스가 스탠드 얼론 상태의 인공신경망 속에서 어떤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겠지만, 무엇인가 기쁘고 푸근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제이콥스는 때때로 얼굴을 찡그리고 비명을 질렀지만,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웃고 있다.

 

 “아빠, 여기 와서 이것 좀 보세요. 여기 엄청 이상한 게 있어요.”

 

 <끝.>